[i.i.il.lʌ.ʌŋ]
















1. 우연히 프랑스에 있는 지인에게서 새해 인사로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숲에 있는 커다란 푸른 바위였다. “작가님, 바위가 파란 바위 인가요?” 하고 물었더니 “아니요, 바위 표면의 물이 얼어 푸른빛을 띠네요.”
2. 이번 전시 이이일러엉[i.i.il.lʌ.ʌŋ]은 무언가의 움직임이나 내 시각의 흔들림을 나타내는 의태어이다. 그리고 이 연결되는 어떤 상태는 다시 다섯 개의 음절로 나뉜다. 연속된 듯한 움직임 속에 분절된 상태가 있다. 난 이 분절된 상태를 공간으로 풀어보고 싶었다.
3. 돌은 흔히 단단한 상태로 쉽게 변하지 않는 물질로 인식되지만, 현무암은 흐르던 용암이 굳어 생성된 물질이다. 제주의 현무암은 이런 과정에서의 여러 상태를 잠재적으로 품고 있으며, 그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 중 ‘지금’이라는 하나의 상태가 잠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돌을 통해 단단함이 품고 있는 긴 시간 속의 미세한 흔들림과 순간성, 그 관계의 찰나를 전시로 풀어낼 수 있을까?
4. 지인이 보내온 사진의 바위는 순간 SF영화 속의 외계행성 같았다. 얼음의 레이어가 만들어낸 푸른빛은 바위가 마치 자신의 또 다른 물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 같았다. 이 겹침은 내게 매우 디지털적인 감각으로 읽혀졌다. 변화하는 물질이 하나의 프레임 안에 잠깐 멈추는 순간, 그 막이 주변과 전혀 다른 관계로 해석되는 순간, 돌의 존재는 고유의 시간성에서 벗어나 잠시 디지털적 사건으로 인식되는 건 아닐까?
5. 여기서 ‘디지털적’은 분절된 사건으로 이해해보고자 했다. 하나의 이미지 속에 숨겨진 수많은 레이어들이 분절된 조건으로 존재하는 상태, 또는 디지털 미세패턴을 이루고 있는 수없이 많은 짧은 선들이 떠올랐다.
6. 디지털 물성은 컴퓨터의 세계, 또는 스크린의 세계에 존재하는 물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전 개인전에서 발견한 벽의 디지털 미세패턴은 내가 찾아낸 매화말발도리 꽃잎 사진의 디지털 미세패턴의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벽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잠재성으로 이 디지털 패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패턴이 가지는 잠재성으로 수많은 자연의 상태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7. 자연의 물성에서 느껴지는 잠재된 디지털 물성, 또는 디지털 물성이 드러내는 물리적 실체의 감각은 분리 가능한 것일까?
8. 공간에서 돌의 레이어와 배치만으로 디지털 물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 수 있을까? 디지털 이미지 하나 없이 디지털 머티리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 현무암의 표면을 하나의 3D 디지털 머티리얼로 변화시킨 후 그 미세패턴과 공간의 돌을 반복적으로 바라본다. 이리저리 돌을 옮기고 그 사이의 관계를 감각하려 애쓴다. 디지털 미세패턴이 가지는 패턴, 마우스를 통한 움직임, 화면 속의 속도와 리듬. 이들의 감각을 전시 공간으로 조금씩 옮겨본다.
김신애